[서울 = 강단 콘텐츠팀] 은퇴 후 13년차 60대 남성이 전 연령·성별 집단 중 우울 증상 유병률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1일 발표한 ‘2026 시니어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13년차 60대 남성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32.4%로, 같은 연령대 여성(21.7%)보다 약 11%포인트 높았다.

조사는 전국 만 60~75세 시니어 3,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국제 표준 척도인 PHQ-9(우울증 선별 도구)를 활용해 우울 증상 여부를 평가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24.1%가 경증 이상의 우울 증상을 보였으며, 이 중 중증·고도 우울에 해당하는 비율도 7.3%에 달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은퇴정신건강팀 이수진 박사는 “60대 남성은 수십 년간 직장 정체성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은퇴 직후 역할 상실감과 목적의식 결여를 여성보다 훨씬 강하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특히 한국 남성은 직장 외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은퇴 후 고립이 심화되면서 우울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고립이 우울증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조사에서 ‘가족 이외의 사회적 교류가 주 1회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우울 증상 집단에서 68.3%에 달했다. 은퇴 후 취미·모임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51%를 넘었다. 연구진은 사회적 연결망의 단절이 우울증 발병 위험을 2.4배 높인다는 분석 결과를 함께 제시했다.

은퇴 이후 정신건강 문제는 신체 건강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증상을 가진 시니어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동반 비율이 1.7배 높았고, 수면 장애 유병률도 2배 이상이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지 않으면 신체 건강까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여전히 낮았다. 우울 증상이 있는 시니어 중 전문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은 11.2%에 불과했다. 이유로는 ‘창피하거나 부끄러워서’(34.7%)가 가장 많았고,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29.1%), ‘어디에 가야 할지 몰라서’(22.3%) 순이었다.

서울시 노인정신건강센터 강민수 센터장은 “시니어 우울증은 치료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질환임에도 편견과 정보 부족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지역 사회 내 접근성 높은 상담 창구를 확대하고, 은퇴 전부터 정신건강 관리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전국 치매안심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연계해 시니어 정신건강 무료 스크리닝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65세 이상 독거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은퇴남성 사회연결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해 고립 예방과 커뮤니티 복귀를 지원할 계획이다.